5박6일간의 여정, 고행분투기
아마 태어나서 처음일 것이다.
지독히도 더웠던 여름한복판에 별다른 준비와 대책없이 걷는여행을 한 것,
갈아입을 옷 몇벌, 슬리퍼한개 넣은 배낭과 함께 8월땡볕을 등에지고
우리는 5박6일을 걸었다.......
.
하루평균 20키로에 닷새...100키로를 걸은 후 인증샷이라면 참 자랑스럽기도 할텐데....
등산화는 첫날 단양역에서 내린 후 저 사단이 났고,
배낭은, 셋째날 나의 식탐때문 인 것 같으니 자세히 알려 하지 마시길,,,.흑흑..
그날밤 저걸 쫑쫑 꼬매느라 늙은언니는 바느질 5분걸리는 일을
바늘귀 꿰는데 50분걸렸다는 무용담?을 훈장처럼 달고 남은 여행을 했더라는 얘기
고, 일케 말하면....음...., 말하고 싶지만....................,ㅉ
따져보니 하루 20km.... 정도? 겨우 걸었을까, 못걸었을까
걷기열풍을 일으킨 베르나르 올리비에 라는 프랑스의 한 할배는
걷기는 '나를 향하는 길, 그리고 타인을 향하는 길'이라고 말쌈하셨지만
그딴 대단한 의미부여 따윈 애초 계획에 포함되지 않은일이었으니
발과 체력이 시키는데로만 걷자....
동안에, 빠른속도로만 지나가던 풍경들이 내가 속도를 멈추자
정지된 그림을 보는 것 처럼 천천히 눈에서 마음으로, 몸으로 녹아들던
특별한 경험을 했으므로 하루에 몇키로를 걸엇은들 대수랴.
정지된 화면 속에는 무구한 시간을 견딘 산과 나무와 강과 길들,
속도로 보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풍경들이 있었다.
첫째날,
단양역에서 그녀들의 기차도착시간에 맞춰 오후3시20분에 만나기로 했다.
(그녀들이란...두어달 전 내집안방에서 수많은 퍼포먼스를 즐기던 그....다소 철없던...그녀들)
김천에서 영주,영주에서 단양까지 환승기차편을 이용했다.
김천에서 영주까지 오전 열차 운행은 3회밖에 없으므로 그녀들과 시간맞추기는 불가,
나의 도착시간은 12시 35분. 거의 두시간가량을 기다려야야 한다,
혼자놀기의 달인인 내가 그깟두시간쯤이야...흠
시내버스 잡아타고 10분쯤 걸려서 읍내로 진입, 짜장면 사먹고 냉카페라떼 한잔 마시고
바디와 밑창이 호물짝 떨어져 나간 등산화 버리고, 단양표 아디다스 트랙킹화 한켤레 구입,
그녀들 점심식사 새우버거 포장해서 다시 시내버스로 단양역 도착하니 15분 남았다.
작은역 대합실에 앉아 한가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건성건성 신문을 들여다 보는일도
여행의 일부 아니던가.
드뎌 그녀들이 왔다.
황량하리만큼 넓고 깨끗한 단양역주변, 아스팔트 광장마당을 달구던 햇볕에 사물들이 하얗게 탈색된 듯하다.
택시를 탈까, 시내버스를 타볼까 왈가왈부끝에 나의 적극적인 걷기주장으로(언제나 처음엔 지나치게 의욕적인 나, 지구력 절대부족)
열기가 아지랑이 처럼 자글자글 피어나는 저 길을 향하여 씩씩한 첫발을 내달은지 10여분 만에 광장으로 되돌아와야 했다
첫 행선지인 소선암휴양림으로 가는길은 인색하게도 자동차전용도로만 있었고 대형 화물트럭들이 질주를 하는 바람에
광장역 앞에 늘어서 있던 택시들의 비웃음과 함께 좌절됬다.
시작도 하기전에 기나긴 휴식시간을 갖게되는 일, 5박6일내내 빈번한 일이었다.
광장앞 나무그늘 쉼터에서 첫컷이다.
그래! 걷는건 피톤치드 빵빵터지는 휴양림 숲길이래야지.
자동차들 질주하는 아스팥트가 웬말이야,
그러나 택시를 타고 찾아간 소선암휴양림은 개인이 운영하는 사유림인지
그곳내 숙박업소 이용객들에 한해서 개방한다는 매표소 직원의 친절하지 않은 응대와 함께
두번째 좌절을 해야했다.
몇날몇일 여행지 관련자료 들여다보고 계획했다던 우리의 방장...몰 한건지...ㅠㅠ
미련없이 되돌아 나와 무턱대고 걷기 시작
어차피 중차대한 목적의식 없이 떠난 길뜸에 예상치 않은 변수가 없다면
싱거워 재미없지 않겠는가.
해도 한풀꺽였고 차량도 많지 않으니 이도로 역시 인도가 없긴해도 걷는길이 만만하다.
웃으며 떠들며 걷다보면 행선지는 정해지게 마련
담날 소백산자락길(어디서 부터 어떻게 찾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우리의 방장은 소백산 자락길이
있다는것만 알고 코스에 대해서는 아무런 예비지식이 없었던 듯, 현지인들은
자락길이란 말조차 모르고, 나도 우리의 방장으로부터 이날 처음 들었다. 몇몇 택시기사들
말을 조합하고 인터넷 검색해서 종합해본결과)
제4 코스가 소선암에서 가장 가까운 단양읍 대강면 가리점마을에서 시작된다.
대강면! 일차 목적지이다.
소선암에서 대강면 가는길에서 한컷
택시기사 말로는 대강면까지 약 10여km쯤 된다고 했는데, 우리,아니 나의 체감거리는 그 두배쯤 되는 것 같다.
분명 10km는 넘을꺼야...안그러면 일케 대강면이 안나올리가 없써...
대강면을 코앞에 두고 그예 어느 작은마을에서 나오는 차를 얻어타고 말았다.ㅠ ㅠ
고맙다고 호들갑스런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나타난 대강면은
아뿔싸
저녁식사를 해결할 만 한 곳도, 숙박업소도 없.....따.
또 장시간 쉬어가며 설왕설래끝에 이정표에 표시된 4.4km 지점의 사인암 발견
기암괴석으로 유명한 관광지니 먹꺼리도 잘자리도 있을 터,
사인암으로 출발....걸어서? 노노노노... 택시로....
절대로 나으 체력적 한계가 아님을 밝혀둔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택시가 내려준 사인암 앞 식당(달봉식당 이던가??)백반. 반찬 가짓수가 열두어가지쯤 되고
반찬구성이 풀종류만 있지않아 좋다. 가격은 그닥 착하지 않은 가격 만원이다.
맛은....? 이날은 아주 맛있게 먹었다. 쨍하게 션한 맥주한잔 곁들여서.
긴하루를 끝으로 짐을 푼 숙소가 가관이다.
외형이 그럴듯하고 휴가철 성수기라 달리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아 결정했지만,
방의 크기와 수준을 감안해 방값을 대폭 깎아내렸음에도(8만원 부르는 걸 대한민국 아줌마 셋이 덤벼서 5만원으로)
성이 차지 않는 방이다.
황토방이라는데 덥기는 왜그리도 더운지 에어컨도 없고,
선풍기가 있긴 한데 틀었더니 방앗간 모터돌아가는 소리처럼 우렁차게 털털거린다
벌레는 또 왜일케 많은거야...아주 곤충채집을 해도 될 지경인데
그중에 백미는 방안이 아주 잘들여다 보이는 눈높이 창문에 말간투명유리창, 그것도 이중창이 다 투명하다...
창문밖으로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그냥 넓은 마당이다. 대체 왜???왜냐고~~~~
그 더운데 창문도 못열고...나중에 다씻고 불끄고 창문열었다. 발만 한짝 가볍게 들면 들어올 수 있는 높이의 창인데
방범까지는....무시했다. 왜냐고? 우린 천하무적 대한민국 오십대 아줌마들 이니까. 한둘도 아닌 무려 아줌마셋.
방값이 싸다는 것 하나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첫날을 보냈다.
*이날 짐풀고 씻기전 사인암넓은 계곡에 옷입은채로 들어가 물쌈과 물놀이를 즐겼다.
밤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던 일, 어둠이 도와서 할 수 있었던 일. 이날 여정에서 얻은 특별보너스덕에
악조건 속에서도 꿀잠을 잔 것같다.
둘쨋날,
단양의 명소중 하나인 사인암
사인암 기암괴벽을 보며 컵라면과 커피로 아침을 때훈 후,
다시 대강면을 향해 걷기 시작...4.4km..음 새털처럼 가비얍게,
바람처럼 자유롭게...
사인암 출발전 완전무장후 달봉식당 직원이 한컷
십리길을 걸어 다시 찾은 대강면에서 우리의 방장께서
4코스 보다는 3코스나 1.2코스가 좋다고 하더라카는 네티즌들의 소갯글에 다시 우왕좌왕하기 시작,
4코스는 뒤로 한채 몇코스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죽령옛길을 시작으로 하는 코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이런저런 수소문끝에 우리가 현재 있는 지점 대강면은 경북 영주시 풍기군에서 가깝고 풍기와 단양의 경계지점이 죽령마루란다.
죽령마루가 버스 종점이니 거기까지는 버스로 이동후 길찾기 해서 걷기로...
시골버스 정류장은 세월을 낚는 태공들 처럼 여유로운 할매들이 한둘 앉아계신다.
할매들과 같이 노닥거리고 앉아 아스케끼 까먹고 한시간여 기다리다 탄 버스엔 딸랑 우리셋과 할매 한분.
소백산 구비길을 수십구비 돌고 돌며 졸다가 쳐다본 맑은하늘에 한사코 쫒아오던 흰구름들.
30여분쯤 달렸을까...처음으로 선 버스정류장에 할머니가 내리는데 짐이 많다.
버스가 안전하게 서길 기다렸다가 아주 느리게 일어서서는 버스안에 널브러져 있던 돗자리를 문밖으로 집어 던지고
보따리 하나 더 집어 던지고, 지팡이까지 집어던지고 오만년 걸려서 내리신다.
아....그 여유로움과 느긋함이란... 강파른 도시것들이 보기엔 한없이 초조해지는 풍경이다.
버스기사의 화가 곧 폭발한 것 같아서 불안한데
웬걸 할매보다 더 여유롭게 기다려주던 알흠다운 태도에 보던 우리가 더 감사해진 진정 알흠다운 풍경.
암튼 할매의 그여유 덕에 우리가 발견한 대단한 한글자!!!
버스가 선 바로 코앞으로 조붓한 소롯길 입구에 누가 볼세라 조그맣게 세워진 소백산3자락길 표지판.
유레카!!!
할매가 내린 속도에 비하면 거의 빛의속도라 할 만큼의 민첩한 동작으로 내렸다.
이코스는 소백산 죽령고개를 마을길과 숲길과 작은 개울들을 끼고걸을 수 있게 조성된 길이다.
(우리가 시작한 코스가 3자락이 끝나는 지점이었고 돌이켜보니 2자락길 1자락길을 끝지점부터 반대로 걸었다)
죽령고개 허리쯤께 자동차길에서 산밑마을로 한참을 내려가서 10여분 걸어야 할매의 집이 나온단다
이날 단양장날에 나왓다가 돗자리 사들고 들어간다는 할매는 버스를 타러 올라오는 언덕길을
대여섯차례 쉬어야 올라간다고 햐셨다.
착한 심성을 가진 춘여사 할매의 돗자리를 들어드리고, 우리의 속도를 쫒느라
바빠진 할매가 안쓰러워 수십번 기다리길 반복하고...
그길에서 마을사람들 두엇 만난일 말고는 차도 행인도 볼 수 없었다.
풀벌레 소리와 나오는 데로 불러대던 우리들 노랫소리만 울려퍼지던 적막한 길
이름모를 풀꽃들이 지천이고 바람속에 떠다니던 그 아득한 꽃향기.
시간이 어느 한 지점에서 멎은 듯하다.
할매의 집 앞에 피어있던 꽃 푸록스?잘모르겠다
할매의 돗자리다.
우리가 걸었다는 소백산 3자락구간을 검색해보니
소백산역에서~죽령옛길~죽령마루~죽령터널~용부원리~장림리까지 총11.4km라고 하는데
우린 대체 어딜 걸은게야
우리가 이정표를 보고 따라 걸은 마을길은 약 4,5km쯤 되고,죽령마루 꼭대기 휴게소까지다.
나머지는 휴게소에서 차가다니던 내리막길이 죽령옛길이라 짐작하는데
그렇담 죽령터널은 어디있던 거였을까...정해진 코스가 뭐 중요한 건 아니지만
암튼 차도를따라 걸은길도 4km는 족히 되지 않을까 싶다.
걷는길에 복숭아,옥수수 파는곳을 만나서 복숭아 깎아먹으며 쉬고
죽령마루 휴게소에서 냉커피 사먹으며 쉬고
아스팔트 어깨길바닥에 퍼대고 앉아 쉬고..또 쉬어가며 걸었는데...
3자락길을 다 걸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걷다가 배도 고파지고 지칠무렵 운좋게도 하루에 몇번 다니지 않는다는 시내버스를 만났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올라타 풍기읍 입성.
오후1시50분경부터 3자락 걷기시작해서
풍기읍입성하니 오후4시.(찍은사진에 시간이 입력되어 있다)
애걔 겨우 2시간 걸었다.
아아 풍기읍...먹을만한 식당이 눈에 띄질 않는다.
맨 풍기인삼,풍기인견집 뿐인 것 같다
걸어서 풍기역앞에 청국장집 하나 겨우 찾아내 앉으니
울 한여사 먹을게 없다. 청국장 2인분에 밥하나 얹어서 먹을라니
가뜩이나 눈치보이는데 주인장 인심도 사나워진다. 청국장은 아주 맛있었다.
이른저녁인지, 늦은점심인지...
늦은밤 숙소에서 배고픔에 대비해 인근마트에서 간단한 요기꺼리 장봐서
소백산2자락길을 향해서 다시 걷기 시작.(알고는 이날 시작못했을 것이다
풍기역주변 택시조합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3,4km되는 가까운 거리라 했다)
다섯시쯤 부터 걸어서 6시쯤이면 삼가리야영장까지 도착할 수 있을꺼란 예측은 빗나가버렸다.
물론 수없이 쉬어가며 노닥거리며 남의집 집짓는구경까지 해가며 걸었지만
도착했을 땐 날이 완전 깜깜해진 후 였다. 7시30분이 넘었을 것이다.
풍기역에서 소백산 2자락구간 삼가리야영장 가는 길,
정자에서 20분쯤 쉬었다. 운동화까지 벋고 누워서...
사진을 올리려고 보니 사진찍기에 참 인색했다. 변변한 사진이 참 없네?
귀차니즘의 대가답다
무슨호순지 호수주변으로 나무테크를 깔아 걷기좋은길이다 약 5,6백m정도 될라나...
이때쯤 부터 힘들기 시작, 슬슬 꾀가 나던 중에
뜬금없이 세운차가 뜻밖에 멈춰섰다.
시내버스가 다니지 않는 곳이고 소백산 산자락길로 들어가는 외길이라 가능한 일.
그러나 이차 역시 2km쯤 얻어타고 끝났다.
서울사는 사람이 풍기에서 인삼농사 지으며 짓기 시작했다는 집터가 위 호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집짓는일에 관심많은 내가 오지랖 넓혀가며 집구경까지 하고 내려왔다.
저무는 길가에서 만난 작은교회의 불빛이 어둡고 사나운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같이 반갑다.
날은 저물어 가고 기운은 점점 빠져나가고
늦은시간까지 걸은 당시의 느낌으로는 최하 10km는 걸었을꺼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확인결과 약 8km 남짓되는 거리였다.
암튼 오만년쯤 걸려서 도착한 삼가리야영장 부근에 숙소는 모두 꽉 찼단다.
헐~~~더이상은 두발짝도 못걸엇...
몇군데 전화시도 후 한집을 소개받았는데...
울동네서도 흔하게 볼 수있는 시골양옥집 민박.
할매,할배 두식구 사는 안채깊숙히 들어가 주방옆에 딸린방
찬밥 더운밥 가릴처지도 아니었지만
우리모두 섣부르게 꾸며놓은 팬션보다 훨씬 좋다는 쪽으로 의기투합,
게다가 방값이 3만원이라니 이 성수기에 말야
이부자리 쾌적하고 욕실 드넓고 뜨거운물 팡팡 쏟아지고,
ㅋㅋ 우리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며 보여준 '모자를 벗은 후'
그녀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싶어 전부는 공개 할 수 없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써야겠다
나중에 다시 이어쓰기로 한다.
사실 오전부터 시작한 글인데 중간중간에 이불빨래 해널고
고추말리는거 걷고 뒤집어 널고 마당에 풀 몇포기 뽑아주고
복숭아 효소 담군것 끓어넘쳐 뒷설거지 하고
경희가 추수한 햇딷콩 쪄와서 까먹으며 놀다가 점심으로 국수 삶아먹고
이주가 개 안약넣자고 도와달라하고
빨래 걷으러 들락날락하고 고양이 밥주고
경희네 집에가서 저녁 얻어먹고 상두랑 영숙이랑 길게 전화수다하고
벌써 일주일 전 이야기니 사진찾아가며 기억을 더듬어서 쓰려니...
지금 대체 몇시간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