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팔자가 상팔자
해질무렵 마을앞 국도변에 작정하고 나섰다.
요맘때 쯤이지...아마도 연한 자색의 토끼풀이 만발해 있으렸다.
바쁘신 동네어른들 눈에 좀 머랄까 죄스럽기도 하고
한심해 보일까도 싶은 맘에, 전지가위 뒷짐으로 살짝 감추고,
어르신들 저녁드시러 집안에 모두 들어가 계실 시간을 잡아
나름대로 치밀한 계산 후,
후다닥 한다발 꺾어다가. 이웃의 경희에게도 선물하고
방마다 꽃등 밝혀 놓았다.
돈벌일도, 또 딱히 돈쓸일도 없는 시골살이 이만한 재미를 포기할 수는 없는일.
움하하
겨우내 불때서 할부지 냄새나던 사랑방에 하루만 갖다놓아도
화사하고 농염한 향기로 오만년 묵은 퀴퀴한 냄새를 날려 버린다지
믿어질라나? 요 쬐끄만 길거리표 잡초에서 농염한 백합향이 난다는 사실
온나라가 슬픔에 빠져 애도중인데 난 이래도 되는걸까 하면서...도
체리세이지 만발한 마당에서 불밝혀 놓은 실내를 보니 참 따뜻하니 좋다.
늦가을 까지 피고지어 나의마당을 비춰줄 고마운 것들
해질무렵 눈처럼 피어난 찔레꽃의 그 요요한 아름다움이라니!
후진 카메라사진으로 담아내기엔 역부족이다
미안타...내가 너의 아름다움을 망쳐놓았구나
요 몇일 매일 늦잠자고 일어나 눈뜨는데로 밥먹고, 커피마시며 음악듣고,
마당한바퀴 둘러보고 야동이랑 몇마디 안되는 대화로 목풀고 들어와, 드라마를 보거나
가끔씩 그림을 끄적이다가 해질무렵이면 꽃꺾으러 어슬렁 거리고...
머슴 서울로 앵벌이 내보내고 나 혼자 팔자 늘어졌다.
아흠
...............................
그리고 늦은 저녁식사 후
검고 푸른 하늘엔 별이 쏟아질듯 굵고
초저녁잠든 마을은 인적하나 없는데
주홍빛 가로등밝힌 어둔 골목길을
산책나간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런 날들이 일년에 몇번이나 될는지
컴컴한 창문.
집집마다엔 가뜩이나 귀어둔 할매들 한분씩
이른잠에 들었으니
맘놓고 쿵쿵 걸어보고 큰숨도 한번 쉬어보고
두팔도 힘차게 내두르며
별빛아래 싸돌아 댕긴 날
머슴, 여전히 나의 훌륭한 모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