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놀면서, 노느니, 놀이삼아

우리, 어느날

발작2022 2009. 11. 17. 21:16

 

 

가을 초입에

마당 한귀퉁이에 무를 심었더랬다.

그의 정성과 조바심과 지극한 사랑으로

대따 큰무가 나올 줄 알았다

 

지난 금욜...

드뎌...비가오니 추워지기 전에 뽑자...고

단디 벼르고, 있는 힘껏 쑤~욱 뽑을 자세로 힘을 줬는데

에게ㅔ  걍 쏙 하고 빠져버린 무....

허.탈.하.다.

 

그럴지언정

손바닥 보다 조금 크고 통통한 것이

어찌나 이뿐지

대견하고 대견하다

흙도 무도 나도 그도.

 

무청 다듬어 시래기 엮어 말린다고

볏짚단 가져다 수차례 시도...끝에

포기....흠 참으로 쉬어보였건만...

세상에 쉬운일은 없다...라는

서글픈 깨달음.

결국 집뒤 서까래 밑에 줄 매달아

빨래널듯이 주렁주렁 걸쳐놓았다.

 

방한개 구들을 살려놓곤

땔감을 만드느라 분주한 그는

생각보다 믿음직하다

내가 알던 책이나 영화속 그어느 머슴보다

장작을 잘패고

원하는 모든건 뚝딱뚝딱 잘도 만들어

맥가이버 보다 유능해 보인다.

어쨎거나

팔자에 없는 머슴살이 라니

덕분에 이몸 마님으로 격상하셨다는...

 

 

불땐방에 나란히 두발뻗고 앉아본다

따뜻하다

머슴은 다정하기까지 해서

미주알 고주알 내 시시콜콜한 얘기도 잘 들어준다.

내 시골살이에서 가장 큰 수확이 있다면

그의 숨겨져 있던 장점을 찾았다는 것.

주워진 환경덕분에 흙강아지 꼴을 못 면하는 날

여전히 꽃본듯이 이뻐해주는 것. 

 

.....영원하길 

 

그가 무척 좋아하는저빨간 양말

자기힘의 원천이라나 모라나...

새벽에 일어나 꼭 저 양말부터 챙겨신고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저 양말이나 챙겨주는...아주 지극히 사소한일

그리고....아낌없는 칭찬

 

테레비가 없는 관계로

앉은자세 그대로 초저녁부터 스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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